반도체 왕국 일본의 몰락

돈의 흐름으로 다시 읽는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가장 좋은 해의 장부가, 가장 조심해야 할 장부일 수 있을까.

한국과 일본의 은행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실적이 좋은 회사 앞에서 오히려 한참 멈춰 서게 될 때가 있다. 이익이 늘어난 이유가 경쟁력인지, 잠시 유리해진 시장 조건인지에 따라 앞으로 몇 년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를 들여다보면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1987년 무렵 일본 기업은 세계 D램 시장의 약75%~80%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선두는 한국 기업의 몫이 되어 있었다. 두 장면 사이에 1986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 놓여 있다.

협정이 판을 흔든 것은 맞다. 그렇다고 일본이 자리를 내준 이유가 협정 한 장에 다 담겨 있지는 않다. 협정이 만든 이익, 그 이익을 보고 움직인 자본, 협정 바깥에서 진행되던 변화까지 이어서 읽어야 이야기가 보인다. 열쇠는 1988년이라는 한 해의 숫자에 있다. 그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자.

정점에서 시작된 통상 분쟁

1980년대 중반, NEC·도시바·히타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였다. 일본산 D램은 품질과 신뢰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정부가 이끈 공동 연구개발과 기업의 공격적인 설비투자가 성장을 밀어 올렸다. 1986년 일본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급국이 되어 미국을 앞질렀다. 1988년에는 반도체 전체 생산 점유율이 52%로 정점을 찍었다.

여기서 숫자의 결을 구분해 두자. 52%는 반도체 전체의 생산 점유율이고, D램 한 품목만 떼어 보면 1987년에 75~80%(자료마다 다르다)까지 올라 있었다.

미국의 위기감은 이 숫자만큼 컸다. 1985년 6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일본 시장의 접근 제한을 문제 삼아 통상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요청했다. 같은 해 일본산 D램을 겨냥한 덤핑 제소가 시작됐고, 10월에는 D램을 처음 상용화했던 인텔이 이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듬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일본산 64K D램이 미국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판정했다.

일본 기업의 우위는 실력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우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일본 기업이 혼자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되고 있었다. 수출 시장의 가격과 무역 규칙을 두고 미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6년 협정은 무엇을 바꿨나

1986년 7월 합의하고 9월 2일 서명한 협정은 세 가지를 약속했다. 외국 반도체 기업의 일본 시장 접근 확대, 덤핑 방지, 그리고 그 대가로 미국 정부가 진행하던 반덤핑 조사와 301조 절차를 보류하는 것이었다.

가격 쪽 장치는 이렇게 돌아갔다. 미국 상무부가 일본 업체의 생산비용 등을 토대로 공정시장가격(FMV)을 산정하고, 일본 통상산업성(MITI)이 수출가격과 비용을 감시했다. 조문이 최저가격을 못 박은 것은 아니어도, 실제 거래에서 이 기준은 일부 반도체의 가격 하한처럼 작동했다.

시장 개방 쪽은 더 미묘했다. 협정 본문에는 외국산이 차지해야 할 점유율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별도의 부속서한에 미국 업계가 기대하는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 담겼고, 일본 정부는 그 기대를 인지하고 있었다. 양국의 해석이 엇갈린 이유다. 1986년부터 법적 의미의 20% 할당량이 생겼다고 말하면 협정의 성격이 틀어진다.

미국은 일본이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987년 3월 보복 조치를 발표했고, 4월 17일 컴퓨터·TV·전동공구 등 약 3억 달러어치 일본산 제품에 100% 관세를 물렸다. 명분은 일본 시장 접근이 여전히 불충분하고, 덤핑 방지와 비용·수출가격 감시가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관세의 과녁이다. 반도체가 아니라 다른 수출품이었다. 반도체 분쟁의 청구서가 일본 기업의 다른 사업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1991년 갱신 때는 외국산의 일본 시장 점유율이 1992년 말까지 20%를 넘을 것이라는 기대가 한층 선명하게 적혔다. 같은 문서에 이 수치가 “보장도, 상한도, 하한도 아니다”라는 문구가 함께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1992년 말 점유율은 20.2%였다. 한편 반도체를 사서 쓰는 컴퓨터 업계가 가격 규율을 걷어내라고 압박했고, 가격 쪽 장치는 1991년 갱신에서 느슨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협정은 1996년에 끝났다. 1986년의 가격 기준이 10년 내내 같은 강도로 작동한 것은 아니다.

이익이 늘어난 해, 비용은 누가 냈을까

협정 이후 일부 D램 가격은 크게 올랐다. 경제학자 더글러스 어빈이 인용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일본 업체가 1988년 한 해 동안 1메가 D램 판매에서 거둔 이익은 약 12억 달러였다. 이 숫자는 협정 덕분에 얹힌 금액이 아니라 해당 제품 판매에서 나온 이익의 추정치여서, 전부를 협정의 몫으로 돌릴 수 없다. 그래도 어빈은 생산 조절과 높아진 가격이 일본 업체에 상당한 이익을 안겼다고 분석했다.

은행 심사라면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익을 낸 능력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격을 떠받친 조건이 사라져도 같은 이익이 나올까.

이 이익의 반대편에는 계산서를 받아 든 쪽이 있었다. 반도체 값이 오르자 이를 사서 컴퓨터를 만드는 미국 업체의 생산비가 올랐고, 이들은 1991년 이전에 가격 조항을 거두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반대로 미국 D램 제조사 가운데서도 수혜자가 있었다. 어빈의 연구에는 198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이익의 최대 60%가 D램에서 나왔고, 마이크론의 매출이 1986~88년에 여섯 배로 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가격 하한 하나가 일본과 미국의 두 제조사에는 수익이 되고, 미국 컴퓨터 업계에는 비용이 된 구조다. 규칙을 설계한 쪽 안에서도 이해관계는 갈렸다.

1988년의 이익은 일본 업체에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이어 갈 여력을 줬다. 그래서 그해의 호황을 곧바로 쇠퇴의 증거로 읽을 수는 없다. 금융의 시선에서 따질 것은 이익의 크기와 지속성이다. 시장 규칙이 가격을 밀어 올린 기간의 실적을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익으로 받아들이면, 다음 변화를 늦게 알아차린다.

오른 가격은 다른 기업에도 신호를 보냈다. 어빈은 D램 가격 상승이, 협정의 가격 규율을 직접 받지 않던 한국 업체의 시장 진입을 앞당겼다고 지적한다. 일본 업체의 판매 조건을 바꾼 조치가, 후발 기업에는 투자할 만한 시장을 열어 준 셈이다.

열린 길을 따라간 한국의 투자

돈은 물과 비슷해서, 한쪽 물길이 좁아지면 다른 길을 찾아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해도 한국 기업의 성장을 협정이 갑자기 만든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전자는 협정 이전인 1983년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한국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이 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됐다. 이듬해에는 256K D램을 내놨다. 높아진 D램 가격은, 이미 시작된 추격에 붙은 순풍 가운데 하나였다.

1992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한국 기업 전체가 D램 시장에서 일본 기업을 앞선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98년이다. 반도체산업사료관은 이 역전의 배경으로 한국 업체들이 D램 개발과 설비투자를 집중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을 든다.

협정의 목적은 미국 업체에 유리한 무역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른 가격을 보고 설비를 늘릴 유인은 한국 기업에도 똑같이 주어졌다. 규칙을 만든 쪽과 그 규칙이 연 기회를 가장 크게 잡은 쪽이 같을 필요는 없었다.

협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

일본의 하락을 1986년 협정 하나에 묶을 수는 없다. 반도체산업사료관은 점유율 하락의 요인으로 협정의 지속, 엔고에 따른 경쟁력 약화, 대규모 설비투자를 포함한 사업 전략의 지연, 수요가 PC와 정보기기로 옮겨 가는 동안에도 가격 변동이 큰 메모리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 한국·대만 업체의 성장을 함께 꼽는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의 엔화 강세가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

숫자가 이 흐름을 보여 준다. 일본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988년 52%에서 1993년 40%, 1999년 28%로 내려갔다.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일본 기업은 1989년 여섯 곳이었지만 2000년에는 세 곳으로 줄었다.

미국 기업도 제 길을 찾았다. 인텔의 D램 철수는 협정 체결 전인 1985년의 일이었고, 훗날 앤디 그로브는 “그때 D램에서 빠져나온 것은 우리가 내린 최고의 경영 판단이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크게 성장했고, 1990년대에는 설계와 생산을 각각 전문으로 맡는 기업들도 자랐다. 이 재편을 일본 D램 점유율 하락의 직접 원인으로 묶으면 서로 다른 시장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협정은 가격과 경쟁 조건을 바꿨다. 일본의 선두 교체는 그 변화 위에 환율, 투자, 수요 이동, 한국 업체의 끈질긴 기술 개발이 겹쳐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지금 다시 묻게 되는 것

오늘의 미중 반도체 갈등에도 수출 통제와 공급망 재편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의 협정은 동맹국 사이의 무역 분쟁에서 나왔고, 지금의 갈등에는 기술과 안보를 둘러싼 전략 경쟁이 겹쳐 있다. 1980년대의 결말을 그대로 옮겨 현재를 예측할 수는 없다.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질문 하나다. 규제가 발표되면 우리는 먼저 그 규제를 받는 기업에 눈이 간다. 시선을 한 칸만 옮기면 높아진 가격을 받는 곳, 설비를 늘릴 여력을 얻는 곳, 새 고객을 확보하는 곳이 보인다. 돈의 흐름은 정책의 목적과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Ironstone Insight

1988년 일본 업체의 1메가 D램 이익으로 돌아가 보자. 좋은 실적이었다. 기술과 생산 능력이 만든 몫이 있었고, 협정 뒤에 달라진 가격 조건이 보탠 몫도 있었다. 어느 부분이 오래 갈지 가려내는 일은 당시의 기업을 평가할 때도, 오늘 어떤 기업의 실적을 읽을 때도 빠질 수 없다.

점유율도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이 품질 때문에 머무는지 가격 때문에 머무는지, 경쟁사가 들어와도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일본 기업의 강점은 실제였지만, 그 강점을 둘러싼 시장 조건은 움직였다. 압도적 우위는 한 번 얻으면 끝나는 재산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신용에 가깝다.

미국이 일본을 겨냥해 만든 가격 틀은 일본 업체에는 단기 이익을, 미국의 일부 제조사에는 호황을, 미국 컴퓨터 업계에는 비용을, 한국 업체에는 투자 기회를 나눠 줬다. 협정이 일본의 쇠퇴를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사건은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에는 진입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남겼다.

지금 좋아 보이는 현금흐름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고, 그 조건이 달라져도 이어질 수 있을까.

※ 이 글은 역사적 사건을 금융의 시선으로 해석한 글입니다. 특정 자산이나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와 사건은 아래 참고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고, 해석은 필자의 관점입니다.

참고 자료

  1. 반도체산업사료관(SHMJ), 「1980년대」「1990년대」 동향 및 1988년 시장 점유율·쇠퇴 요인 전시 페이지 (shmj.or.jp)
  2. Reagan Library /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Memorandum on the Japan-United States Semiconductor Trade Agreement”(1986.7.31), “Memorandum on Tariff Increases on Japanese Semiconductor Products”(1987.4.17)
  3. Douglas A. Irwin, “The U.S.-Japan Semiconductor Trade Conflict”, in A. O. Krueger (ed.), The Political Economy of Trade Protec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NBER). 1988년 1메가 D램 이익 약 12억 달러, TI·마이크론, 한국 업체 진입 가속
  4. Douglas A. Irwin, “Trade Policies and the Semiconductor Industry”, in A. O. Krueger (ed.),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Trade Polic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NBER). 1987년 3월 27일 100% 관세 발표
  5. Douglas A. Irwin, “Trade Politics and the Semiconductor Industry”, NBER Working Paper 4745, 1994 (초록)
  6. Samsung Semiconductor, “About Us” (64K D램 개발, 1992년 메모리 1위)
  7. Intel, “Farewell to DRAM” (1985년 10월 철수, 앤디 그로브 회고) — timeline.intel.com/1985/farewell-to-dram
  8. Wikipedia, “1986 U.S.–Japan Semiconductor Agreement”(서명일, 부속서한, 1992년 말 20.2%)
  9. The Heritage Foundation, “Let the U.S.-Japan Semiconductor Agreement Expire”(1991년 갱신: “보장도, 상한도, 하한도 아니다”)

용어 풀이

D램(DRAM): 컴퓨터가 작동하는 동안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

공정시장가격(FMV): 당시 미국 상무부가 일본산 반도체의 생산비용 등을 근거로 산정한 가격 기준. 일부 제품의 거래에서 사실상 가격 하한처럼 작동했다.

통상법 301조: 외국의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법적 수단. 1985년 반도체산업협회의 조사 요청과 1987년 보복 관세에 적용된 조항은 1974년 통상법 301조다(1988년 신설된 ‘슈퍼 301조’와는 다르다).

통상산업성(MITI): 당시 일본의 산업·통상 정책을 맡은 정부 부처(현 경제산업성). 협정 이후 일본 업체의 반도체 수출가격과 비용을 감시했다.

덤핑: 수출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낮은 상태를 가리키는 무역법상의 개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면 가격 차이와 함께 수입국 산업의 피해 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플라자 합의: 1985년 주요국이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로 한 합의.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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