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stone Insight · PART 2 세계사와 자본 · Chapter 8
1985년 9월 22일 일요일, 뉴욕 플라자호텔. 다섯 나라 재무장관이 모여 짧은 성명을 냈습니다. 달러 이외 주요 통화의 “질서 있는 추가 절상”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합의문에는 엔화를 두 배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40엔 안팎이던 환율은 1987년 말 120엔대까지 내려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방향만 정했는데 시장이 크게 움직인 이유
달러 약세는 합의 당일에 시작된 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내려가던 달러에 주요국이 함께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더해졌고, 시장은 이를 “각국 정부가 더는 강한 달러를 그냥 두지 않겠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에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강한 달러는 수입품을 싸게 해 주지만 수출 기업에는 부담이었고,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함께 커지는 쌍둥이 적자가 정치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것을 “일본을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각본”으로만 보면, 그 뒤 일본이 스스로 내린 선택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합의는 환율의 방향을 바꿨을 뿐이고, 그 충격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별개의 정책 선택이었습니다.
똑같이 1만 달러를 팔아도 손에 쥐는 엔화는 절반
가상의 수출기업이 제품을 1만 달러에 판다고 해 봅시다. 240엔이면 엔화 매출이 240만 엔, 120엔이면 같은 제품인데 120만 엔입니다. 원가가 엔화로 고정되어 있고 환헤지가 없다면 이익은 크게 줄어듭니다.
기업은 가격을 올리고, 원가를 줄이고, 해외로 공장을 옮깁니다. 문제는 걸리는 시간입니다. 해외 공장은 환율이 바뀐 다음 날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 해에 조금씩 내려가면 버틸 시간이 있지만, 두 해 만에 절반이 되면 그 시간이 사라집니다.
낮아진 금리는 왜 2년 넘게 유지됐을까
일본은행은 공정할인율을 1986년 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다섯 차례 내려 5.0%에서 2.5%로 낮췄습니다. 흥미로운 건 인하 자체보다 그다음입니다. 2.5%는 1989년 5월까지 2년 넘게 유지됐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국제 공조입니다. 1987년 루브르 합의에서 주요국은 달러가 더 떨어지지 않게 하기로 했는데,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엔화가 더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해 10월 뉴욕 증시가 폭락한 블랙먼데이 이후 금리를 낮게 유지하라는 압력이 커졌습니다. 셋째, 엔고로 수입품 가격이 내려가 물가가 안정돼 있었습니다.
세 가지가 겹치니 금리를 올릴 명분이 없었습니다. 여유자금을 주식·채권·토지에 굴려 수익을 내는 자이테크 열풍이 이 환경에서 퍼졌습니다. 여기에 땅을 담보로 앞다퉈 돈을 빌려주던 은행들의 대출 경쟁이 더해졌습니다. 저금리는 버블이 생길 환경을 만들었고, 실제로 버블을 키운 것은 그 환경에서 기업과 은행이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은행 현장에서 보면: 환율 전망보다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먼저 본다
환율 충격을 맞은 수출기업을 볼 때는 환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보다 회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합니다. 언제쯤 판매 가격을 다시 협상할 수 있는지, 비용을 어느 나라 돈으로 쓰는지, 공장을 옮기는 몇 년 동안 운영자금 대출을 계속 갚아 나갈 수 있는지를 봅니다. 여유자금으로 산 주식과 땅이 필요할 때 현금이 된다고 가정하지도 않습니다. 본업이 어려운 때에는 투자자산 가격도 함께 내려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Ironstone Insight
플라자 합의 이후의 엔고는 일본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를 바꿨고, 그 충격에 대응한 금융 완화는 돈을 빌리는 조건을 바꿨습니다. 같은 정책 아래에서 어떤 기업은 생산 방식을 바꿨고, 어떤 기업은 자산 운용을 늘렸습니다.
환율이 크게 움직일 때는 손익의 변화와 함께 충격을 줄이려고 풀린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봐야 합니다. 지금 늘어나는 대출은 다음 소득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을까요, 아니면 가격 상승을 따라 자산을 사는 데 쓰이고 있을까요?
간단 용어정리
- 플라자 합의 1985년 G5가 달러 이외 통화의 질서 있는 절상을 지지한 합의. 특정 환율을 보장한 약속은 아니다
- 루브르 합의 1987년 2월, 달러 추가 하락을 막고 환율을 당시 수준 부근에서 안정시키려 한 합의
- 자이테크(財テク) 기업이 여유자금이나 조달 자금을 주식·채권·부동산에 굴려 수익을 노리는 활동
출처
- G5 플라자 합의 성명(1985년 9월 22일)
- 일본은행의 1980년대 정책 회고 자료
- 마에카와 보고서(1986년 4월)와 일본 정부 긴급경제대책(1987년 5월)